선정 이유
또 하나의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미 운영되고 있는 모임에 합류한 것이 아닌 내가 멤버를 모아서 새로 시작했다.
1월 초에 킥오프를 진행하며 첫 도서를 선정했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고, 함께 논의해서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내가 제안한 <과학이 필요한 시간>으로 결정됐다. 첫 도서인 만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리고 평소에 잘 접하지 못하는 과학 주제이니까, 또 마지막으로 멤버 중 한 명이 자칭 ‘궤도 빠’로 셀프 소개할 정도로 흥미를 보여서 자연스럽게 수렴이 되었다.
기존 <과학 허세>책과 다른 점은?
궤도 씨가 출판한 책은 지금까지 2권이 있는데 <궤도의 과학 허세>와 이번에 읽은 <과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먼저 나온 <궤도의 과학 허세>가 좀 더 위트 있는 톤으로 일상 생활과 가까운 과학 이야기라고 한다면, <과학이 필요한 시간>은 과학 개론처럼 수 많은 이론과 법칙 개념이 나열되고 이해를 돕는 간단한 비유와 예시 정도가 첨가된 느낌이다.
영상에서 책으로, 과학폭의 연장선
그래서인지 8시간 라이브 방송처럼 끊임 없이 나열되는 과학 이론에 살짝 정신이 혼미해지는 구간이 있다. 유튜브에서 우스갯소리로 본인의 끊임없는 과학 이야기를 '과학폭'이라고 표현하는데, 정말 텍스트로 과학폭 받는 느낌... :)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감 있게 빠져들 수 있는 내용은 아니고... 흥미롭거나 쉽게 이해되는 파트도 있지만, 이건 또 뭔 소리지... 글을 읽어도 문자 그 자체를 읽을 뿐 머리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ㅋㅋㅋ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아마 읽는 사람의 과학 지식 수준과 배경에 따라 상이할테지. 실제로 독서모임 멤버마다 재밌었던 파트, 읽기 힘들었던 파트가 다 달랐다.
특정 개념에 깊이 파고들기보다 얕게 많은 개념을 다루다 보니, 어떻게 보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과학판 느낌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 덕분에 새로 알게 된 지식이나 중간 중간 인상 깊은 문장 정도는 있었지만, 이걸 독서모임에 가져간다고 하면 대체 어떤 질문을 준비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되었던 책이다.
이해되나 그래도 아쉬운 용두사미
사람들이 궤도를 재밌어하고, 무엇보다 궤도가 말하는 과학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맥락과 상황 위에 '아니 여기서 과학이 또?'싶은 포인트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대화를 하다가 거기서 잡은 키워드로 과학 지식을 늘어놓거나, 과학적인 관점과 사고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이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몇 시간이고 과학 이야기를 해도 맥락 자체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책은 그럴 수 없다.
개념을 갑자기 던지기 위해 일화나 비유를 짜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읽는 입장에서 대뜸 시작하는 과학 이야기가 평소 익숙했던 궤도의 과학을 생각하니 좀 낯설었다. 근데 이건 그렇게까지 거슬리는 면이 아니었다.
더 아쉬웠던 부분은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질 때였다. 큰 포부로 시작했지만 과제 제출 시간 10분을 남기고 갑자기 이상적인 제언으로 와다닥 마무리 짓는 레포트 같달까...사실 책 자체가 단순히 개념을 설명하는 성격이라 어떤 시사점이나 교훈을 주기가 어려운데, 대부분 개념의 마무리를 그런 식으로 하기 위해 애쓴 느낌이 강하다. 이건 서점 가서 목차 중 몇 개념만 읽어보면 바로 이해할 듯... 그래서 '갑자기 이렇게 끝난다고?' 하면서 아쉬울 때가 있었고, 이건 다른 멤버들도 모두 공감하는 바였다.
다만 이 아쉬움도 '과학의 대중화' 맥락에서 더 많은 개념을 늘어놓기 위해, 활자라는 수단 위에서 어느 정도 타협한 결과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특정 과학 이론에 대해 쓰는 것도 제대로 쓰면 몇 백, 몇 천 페이지가 나올텐데 다양한 이론에 대해 쓰게 되면 적당한 이해 수준으로 끊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도 어떤 이론과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도 이거 다 설명하려면 없으니 이 정도로만 알아도 충분하니 우선 끊고 다음으로 넘어갈게~ 하는 태도가 자주 등장한다. 궤도 씨 이 책 쓰느라 뭔가 많이 고민하고 애쓰셨을 것 같음... ㅠㅠ
사실 독자의 몫으로 완성되는 책
그런데 사실 이 책은 궤도 혼자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닌 독자의 몫이 아주 중요하다. 과학이란 건 어떤 지식을 떠먹여주고, 그 지식을 알고 있다고만 해서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을 가지고 나의 세계를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을 지 일상의 많은 순간에서 계속 고민해야 한다. 과학적 사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임 전 우려했던 것과 달리 과학적 사고와 그에 연관된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많이 오고 갔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는데 카페 운영 시간이 10시까지라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끊고 마무리 할 정도였다. 모임 시작 때 첫 질문으로 각자의 간단한 완독 소감과 평을 나눴을 때만 해도 모두 아쉬움이 가득했는데, 이 책을 계기로 과학적 사고로 계속 접근하고 대화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 어쩌면 궤도는 이런 걸 바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에서 궤도가 '이걸 과학적으로 생각해보면~'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웃음 포인트가 된다. 근데 이 유머같은 접근이 과학적 사고 태도 그 자체이다 (당연한 말;). 우리 중 누군가는 처음 이 책이 선정될 때 '아 유튜브에서의 TMT 궤도 그대로인 거 아냐' 하며 장난스레 질려했지만, 어느새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 거잖아?', '과학적으로 보면 ~~~ 수 있는 거네?' 남발하며 신선함에 재밌어하고 있었다. 우리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문학, 철학적인 접근으로 바라보지만, 동시에 과학적으로도 해석하고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원래 과학은 정답이 없는 과정
과학 철학의 기본은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며 의심하고, 뭐든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나에게도 적용되어 나조차도 틀릴 수 있다는 자세로 열려있는 것이다. 앞서 용두사미에 비유하며 개념 끝마다 후다닥 끝나는 마무리가 아쉽다고 했는데, 또 어느정도 이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과학은 견해의 영역이 아니라 검증의 영역이고, 정답은 당연히 없으며, 언제나 종결 없는 과정이다.
책을 바라보는 온도가 계속 바뀌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ㅎㅎ <과학이 필요한 시간> 책과 과학에 대해 최대한 다각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이런 생각을 나누었고, 이런 유연한 사고 전개가 마음에 드는 모임이었다.
평점은 3점 ⭐️⭐️⭐️
- 추천 대상: 가볍게 과학 지식을 채우고 싶은 사람.
- 비추천 대상: 과학 지식 수준이 높은 사람. 깊은 접근과 통찰력을 원하는 사람.
- 총평: 방대한 과학 영역의 허들을 낮춘 노력이 잘 보이는 동시에 다음에는 과학’ 이야기보다 ‘궤도의 과학’ 이야기 혹은 특정 주제를 과학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책도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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